리계순
처창즈유격구가 해산된 후 안도현의 어느 한 골짜기에서 살다가 주체25(1936)년 여름
입대후 주력부대의 재봉대와 작식대에서 맡겨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으며 곰의골밀영의 후방병원에서 동상치료를 받을 때에는 스스로 간병원이 되고 작식대원이 되여 환자들을 정성다해 돌봐주었다. 1937년 겨울 후방병원으로 불의에 달려든 적들과 용감히 싸우다가 체포되였으며 장백현경찰서에 이송된 후에도 놈들의 악착한 고문과 회유책동을 이겨내며 완강하게 싸웠다.
그는 적들에게 학교운동장에 주민들을 모이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적들이 《공산군》의 《전향》연설을 듣으라고 장백현 소학교운동장에 수많은 군중을 강제로 모여놓았을 때 그는 힘찬 반일연설과 함께 《
사리원제1사범대학이 리계순의 이름과 함께 불리워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