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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슬기로운 조선민족이 남겨놓은 우수한 문화유산들가운데는 고구려의 광개토왕릉비도 있다.

    광개토왕릉비는 고구려의 강화발전에 크게 기여한 광개토왕(374-412)의 공적을 찬양하여 그의 릉에 세운 기념비이다.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이 414년에 건립한 이 릉비는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오늘의 중국 길림성 집안시)의 동쪽언덕에 서있다.

    릉비는 비몸돌과 대돌의 두부분으로 구성되여있다. 대돌은 화강암을 가공한것인데 길이 3.35m, 너비 2.7m, 두께 0.2m의 판돌이다. 대돌우에는 응회암으로 만든 높이 6.34m, 너비 1.43~1.9m, 두께 1.53m의 큰 비몸돌을 세웠다. 매끈하게 가공한 비몸돌 4개 면에는 가로세로 줄칸을 치고 새긴 글자가 빼곡이 차있다. 비문은 모두 44줄 로 내리새겼는데 1면에 11줄, 2면에 10줄, 3면에 14줄, 4면에 9줄이다.

    글자는 줄마다 41자씩 새겨 모두 1800여자(1면 6줄만 39자)인데 그 가운데서 알아볼수 있는 글자는 1530여자이다.

    비문의 내용은 크게 3개 부분으로 되여있다. 첫 부분에는 고구려의 시조전설로부터 광개토왕의 즉위와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경위가 개괄되여있다. 둘째 부분에 기본내용이 서술되였는데 광개토왕이 고구려의 령토를 넗힌 공적을 자세히 밝히고있다. 셋째 부분에는 왕릉을 지키는 묘지기의 정원수, 그들이 지켜야 할 사항 등이 새겨져있다.

    이 비문에는 삼국통일을 위한 고구려인민들의 투쟁과 념원이 일정하게 반영되여있다.

    광개토왕릉비는 선조들이 직접 쓴 금석문유산중에서 가장 오랜것의 하나로서 그 내용의 풍부성으로 하여 고구려사와 세나라 호상관계사 및 조선의 대외관계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