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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유격대식의리의 체현자

    수령에 대한 도덕의리를 높은 경지에서 구현한 투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개척하시고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혁명력사에 대한 권위있는 증견자, 힘있는 보증자로 조선로동당이 높이 평가하는 림춘추동지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도덕화한 충실성의 전형, 항일유격대식의리의 체현자라고 말할수 있다.

    사실 림춘추동지는 명석한 두뇌와 높은 의술, 재치있는 필치로 하여 어려운 항일혁명을 하지 않고도 제밥벌이를 얼마든지 할수 있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그는 생사를 기약할수 없는 사선의 고비를 수십수백번이나 넘으면서도 위대한 수령님을 따르는 혁명의 길에서 한번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위대한 수령님과 동지들앞에 지닌 의리를 한번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룡정감옥에 갇혔을 때 자기가 죽어도 혁명은 승리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자기 개인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혁명조직과 동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보호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적들의 야수적인 고문을 이겨냈다. 자기가 죽으면 혁명도 의의가 없다고 생각하며 조직과 동지들이 피해를 입더라도 자기가 살아야겠다는 심보를 가지고 고문에 굴복한 배신자들과는 대조되는 여기에 림춘추동지의 혁명에 대한 충실성, 수령에 대한 충실성의 진모습이 있는것이였다.

    이러한 그였기에 해방후 중국 동북지방에 전권대표로 파견되여갈 때 항일혁명렬사의 자녀들을 많이 찾아 조국으로 내보낼데 대하여 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과업을 사업과 생활의 첫자리에 놓고 중국인민의 국내전쟁을 위한 전선원호, 정권기관들의 조직, 교육사업, 각계각층 인사들과의 사업을 하는 분주한 나날속에서도 한명의 렬사자녀라도 더 찾기 위해 간도의 부락들을 발이 닳게 돌아다니였었다.

    누데기를 걸친 람루한 행색의 아이들이 광고를 보고 찾아올 때마다 림춘추동지는 그들을 품에 와락 끌어안고 너는 누구의 아들이구나, 너는 누구의 딸이지, 김일성장군님께서 너희들을 얼마나 안타깝게 찾고계시는지 아느냐고 하면서 아이들의 볼을 막 비비였다고 한다.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얼마동안 지방에서 활동한적이 있었는데 평양에 회의를 올 때마다 그는 시내의 려관에서 류숙할 잡도리를 아예 하지 않고 곧장 모란봉에 올라가 투사들의 묘소옆 잔디밭에 백포를 펴고 잠을 자군 하였다고 한다. 한지에서 전후좌우에 전우들의 무덤이 있는 산등성이에서 한장의 백포에 몸을 맡기고 그는 《이 사람들아, 조국이 당신들을 가장 필요로 하고있는 때에 당신들은 어찌하여 이곳에서 잠들고있는가. 장군님께서 지금 조선의 운명을 두어깨에 걸머지시고 얼마나 고군분투하시는지 아는가?》고 하면서 무덤속의 전우들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때여서 시민들중에는 모란봉의 무성한 초목속에서 투사들의 혼백이 고이 잠들고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사람들이 그닥 많지 못하였고 더우기 어떤 허우대 큰 사나이가 이따금씩 그 혼백을 안고 자다가는 첫 아침에 조용히 모란봉에서 내려오군 한다는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이것이 항일유격대식의리, 조선혁명의 첫 세대들이 지니였던 수령에 대한 도덕화된 충실성과 숭고한 동지적의리의 일단을 보여주는 산모범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