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달리 음악적감수성이 뛰여난 조선의 선조들은 예로부터 노래와 춤을 즐기였는데 고대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의 감정정서를 노래나 악기연주로 훌륭히 표현할수 있었으며 성악, 기악, 무용 등 예술의 여러 분야들이 대단히 발전되여있었다.
고대에 선조들의 풍만한 정서생활속에서 많은 음악과 무용작품들이 창조되였지만 지금까지 옛 기록들에 전해오는것으로서는 《공후인》과 《공막무》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대로부터 음악과 무용이 발전하였습니다.》
《공후인》은 B.C. 5~B.C. 4세기에 고조선인민들속에서 창조된 서정이 강한 민속가요이며 《공막무》는 그 노래에 맞추어 긴소매옷을 입고 춘 민속무용이다.
《공후인》의 창작경위에 대하여서는 옛 문헌들에 자세히 전해지고있다.
그에 의하면 고조선의 배사공이였던 곽리자고라는 사람이 어느날 이른 새벽 배를 저어 나루를 건느려 할 때 백수광부(머리가 흰 늙은이)가 미친듯 병을 들고 사품치는 강물에 뛰여들어 건느기 시작하였다. 그의 안해는 남편의 뒤를 쫓아와서 부르면서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고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 이를 보고 백수광부의 안해는 공후를 부둥켜안고 타면서 《공무도하가》를 지어불렀는데 그 소리가 심히 슬프고 애처로웠다. 곡을 마친 안해도 강물에 몸을 던져 죽고말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곽리자고는 집으로 돌아와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나서 백수광부의 안해가 죽음을 앞두고 부른 노래를 들려주었다. 려옥은 곧 공후를 당겨 그 음률을 재현하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 문헌기록을 보면 고조선사람들이 생활속에서 늘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타면서 정서적인 생활을 하였으며 자기들의 감정정서를 즉흥적으로 노래할수 있는 뛰여난 음악적재능을 가지고있었으며 노래와 춤을 즐기는 고조선사람들의 생활속에서 《공무도하곡》과 같은 사람들의 심금을 크게 울려주는 명곡이 창조될수 있었음을 알수 있다.
명곡에는 아름다운 춤가락이 따르기 마련이다.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통하고 애절함에 눈물흘리게 하는 이 노래가 사람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지는 과정에 그 곡에 맞추어 부드럽고 우아한 정서로 추는 춤도 창조되였다. 그것이 《공막무》이다.
옛문헌인 《악서》에는 《공막무》가 《공막도하곡》(《공무도하곡》)의 춤이였다는데 대하여 기록되여있다. 이 춤은 애절한 정서의 음악에 맞추어 부드럽게 추는 긴소매옷춤이였다고 한다.
《공무도하곡》과 《공막무》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이른시기의 음악무용유산으로 된다. 조선의 선조들은 이렇게 고대로부터 정서가 풍부하고 예술적형상력도 대단히 높은 우수한 음악무용유산들을 창조발전시켜왔으며 그것은 민족예술발전의 토대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