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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랜 연원을 가진 민족악기-피리

    피리는 오랜 력사적전통을 가지고있는 민족악기의 하나이다.

    우선 피리는 그 형태가 단순하고 간편하지만 음색이 청아하고 명료하여 오래전부터 조선인민이 민속예술발전에 널리 리용되였다. 조선인민은 원시시기부터 짐승의 뼈, 나무잎이나 줄기, 갈대 등 다양한 재료로 피리를 만들어 사용하여왔다. 라선시 서포항유적의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는 B.C. 3000년기의것으로 인정되는 뼈피리가 발굴되였는데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이른 시기의 피리유물이다.

    고대에 고조선사람들은 짐승뼈나 대로 만든 청아한 음색의 피리뿐아니라 복숭아나무잎 등 여러가지 나무잎을 말아서 만든 웅글고 기백있는 음색의 도피피리(관목), 가와 같은 피리속악기들도 널리 제작하여 신호용악기, 합주용악기로 사용하였다.

    삼국시기에 고구려사람들은 소피리와 대피리, 도피피리 등 여러가지 피리들을 음악형상에 리용하였으며 백제와 신라인민들의 생활속에서도 민족적인 정취를 자아내는 관악기로 피리가 널리 쓰이였다.

    발해 및 후기신라시기 사람들은 피리의 음색을 더 크고 맑게 하기 위하여 나무잎이나 줄기, 짐승의 뼈뿐아니라 옥돌, 금속 등 여러가지 재료들을 사용하였고 관현악들에서 주요선률악기로 썼는데 옛 문헌에도 《모든 고려악(발해악)은 피리소리로서 조화시킨다》고 하였다.

    고려시기 피리는 민간예술인들뿐아니라 농민, 어부, 목동, 문인선비 등 각계층 사람들속에서 더욱 인기를 끄는 대중악기로 광범히 보급되였는데 《어부의 노래, 나무군의 피리소리가 그칠새 없었다》, 《목동의 피리소리 구름밖에 울려가고 나무군의 노래소리 달빛아래 들려오네》와 같은 문헌기록들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피리는 독주용, 중주용 악기로 쓰이였다. 이 시기 민간에는 피리(세피리, 향피리)2명, 저대1명, 해금1명, 장고 1명, 북1명 등으로 편성된 기악연주형식으로서 삼현륙각이 성행하였는데 여기에서 기본선률은 피리가 담당하였다.

    또한 피리는 민족악기들가운데서도 가장 간편하면서도 재료와 형태가 다양한 악기였다.

    피리를 만드는 재료로는 황죽(누런참대)이나 짐승뼈가 쓰이는데 짐승의 뼈로 만든 피리는 그 소리가 더욱 청량하였다고 한다.

    피리는 그 제작이 간단하며 어린이들도 갈대, 벗나무껍질, 버드나무껍질을 리용하여 손쉽게 만들었는데 이것을 버들피리, 초적이라고 하였다. 옛 문헌에 초적을 배우는데는 《스승이 없고 누구나 노래곡조를 알면 휘바람을 불듯이 노래곡조를 연주할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피리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랜 력사적연원을 가진 자랑스러운 민족악기, 조선인민이 생활속에서 애용하며 널리 사용하여온 대중악기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