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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안북도 구성시에 있는 구주성은 력사상 《구주대승리》로 이름높은 성이다.

    구성 또는 구주라는 이름은 산줄기들이 가로세로 시내를 내리지른 모양이 마치 거북잔등같다는 뜻에서 붙여진것이다.

    구성은 북방방위와 교통의 요충지로서 고려때 여기에는 대도호부를 두었었다.

    구주성은 구성북쪽 리구산의 자연지세를 리용하여 쌓은 견고한 돌성이다. 구주성은 994년 즉 고려초기에 처음 쌓았는데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졌다. 내성은 옛 구성읍을 에워싸고있으며 외성은 내성의 서북쪽에 덧붙여 쌓은것이다. 내성의 둘레는 약 5㎞, 외성성벽의 길이는 약 1.5㎞이다. 성벽은 대체로 외면쌓기방법으로 쌓고 평지대를 지나는 곳에서는 량면쌓기방법으로 쌓았다. 성벽에는 필요한 곳마다 치가 설치되여있다. 성벽우에는 성가퀴가 있었다.

    내성과 외성에는 여러개의 문이 있었다. 구성 남문은 《위원루》, 《진남루》, 《완대루》라고도 불리웠다. 994년 처음 세웠던 이 문은 1702년에 고쳐지은 일이 있다. 질좋은 화강석을 잘 다듬어쌓은 축대우에는 정면 3간, 옆면 3간의 장중한 2층문루가 세워졌다.

    문루의 주추돌가운데서 남쪽복판의 2개 주추돌에는 성의 이름과 어울리게 거부기가 형상되여있다.

    내성과 외성사이에는 지하문을 내여 군사들의 행동상 은밀성을 보장하도록 하였다.

    성벽을 따라 돌아가면서 감시하기 좋은곳들에는 장대들을 두었다. 그중 성의 동북쪽에 위치한 북장대가 전투지휘에 제일 편리하게 되여있다.

    구주성은 나라를 지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구주성에 의거한 고려인민들의 자랑찬 투쟁가운데서 1019년 10여만명의 거란침략군을 몰살시킨 《구주대승리》는 빛나는 자리를 차지한다.

    구주성은 오늘도 잘 보존되여있으며 고려인민들의 자랑스러운 투쟁력사를 길이 전해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