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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다시 찾은 광명

    앞못보던 한 영예군인이 어떻게 다시 광명을 찾게 되였는가를 말해주는 이 이야기는 서로 돕고 이끄는 미풍이 차넘치는 사회주의조선에서 꽃펴난 아름다운 이야기들중의 하나이다.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앞못보는 영예군인이 있었다.

    이것을 알게 된 동사무장은 그를 친자식처럼 돌봐주었다.

    어느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혁명활동소식이 실린 당보를 들고 그 영예군인을 찾아갔던 동사무장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영상을 한번만이라도 뵈올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오열을 터뜨리는 그 영예군인에게 눈을 꼭 고치자고 하면서 신심을 안겨주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동사무장은 신병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였으나 영예군인과 한 약속을 위해 중앙의 여러 병원들에 편지를 쓰고 자신이 직접 이름있는 의사들을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 그는 김만유병원에 있는 의사 김정선생을 만나게 되였다.

    김정선생은 영예군인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였다.

    검사결과를 놓고 여러 의사들은 회복이 거의나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김정선생은 한 영예군인에게 다시 광명을 찾아주리라 마음먹고 그의 시신경을 살리기 위한 탐구의 낮과 밤을 보냈다.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사들과 함께 환자의 치료에 쓰일 약물에 대한 토론도 하고 적중한 치료방법을 찾아내려고 인민대학습당에도 다니였다.

    그러던 어느날 환자에게 빛감각이 생겼다.

    그러나 난관은 계속되였다. 쓰고있던 약물을 계속 쓰면 간기능장애를 가져올수 있었던것이다.

    새 약물치료를 위하여 고심하던 김정선생의 머리속에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고 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유훈이였다.

    그는 우리의 약물이면서도 세계적인것을 만들어내는 여기에 새 치료방법의 열쇠가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방대하고 아름찬 문헌연구사업을 진행하면서 한치한치 돌진해갔다.

    그러다가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사들이 연구개발한 신경세포재생능력이 큰 새로운 항산화제에 관심하게 되였고 그들과 협력하면서 이미 림상실천에서 효과를 본 치료방법을 대담하게 들이대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영예군인은 다시 광명을 찾게 되였으며 그처럼 뵙고싶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인자하신 영상을 당보에서 뵈올수 있었다.

    그날 영예군인은 위대한 수령님들과 꼭 같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품속에서 다시 광명을 받아안았다고 하면서 경애하는 원수님께 고마움의 인사를 삼가드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