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단은 오래전부터 세계에 널리 알려져있다.
비단은 자연섬유로 만든 가볍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천이다.
청동기시기부터 고대시기에 이르는 전기간 조선사람들은 역삼천과 모시천뿐 아니라 질좋은 비단을 짰다.
청동기시대의 집터자리와 평양의 남경유적에서 발굴된 질그릇쪼각의 밑굽에 누에가 좋아하는 뽕잎이 그려져있다.
누에를 그린 질그릇쪼각들과 누에조각품들이 봉산의 지탑리유적에서 발굴되였다.
이것은 조선이 누에를 치는데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으며 신석기시대에 벌써 비단을 생산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것으로 된다.
두겹실로 짠 일반비단인 고대시기의 겸포, 고려시기의 비단들인 금실을 넣어 짠 금, 무늬를 넣어 짠 사치한 비단을 비롯하여 조선에는 여러가지 비단이 많았다.
조선의 비단짜는 기술이 세나라시기 일본에 전파되였다.
일본의 한 력사책에는 조선의 기술자들이 4-5세기와 7세기에 바다를 건너 일본에 와서 비단짜는 기술을 배워주었으며 그때부터 일본에서는 비단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고 씌워져있다.
비단생산기술이 보다 발전하였으며 918년부터 1392년 고려시기에는 그 종류가 늘어났다. 이 시기 비단의 질도 개선되여 중동과 근동에까지도 비단이 수출되였으며 결과 《고려비단》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인1392년부터 1910년사이에 좋은 장소들에 비단생산기지들을 세우고 뽕나무를 널리 심었다.
한평생 우리 인민들에게 더 좋은 옷을 해입히시기 위해 마음써오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