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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민보증서》에 깃든 사연

    주체26(1937)년 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에게 장백현 하강구와 국내의 신파지구에 나가 혁명조직들을 튼튼히 꾸리고 넓은 지역으로 확대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엄옥순이라는 변성명을 하고 이 지구에 가시여 뜨거운 인정미로 마을사람들을 대하며 혁명조직들을 꾸리고 확대하는 사업을 진공적으로 벌리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뜻하지 않게 적들에게 붙잡힌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직의 비상구출작전에 따라 정안군부대로부터 14도구경찰서로 그리고 다시 13도구경찰서로 이송되시였다.

    그때 도천리구장노릇을 하고있던 혁명조직성원이 경찰서에 가서 김정숙동지를 석방하기 위한 교섭을 벌리였다.

    경찰서장은 500명의 량민보증서를 작성해오면 김정숙동지를 《량민》으로 인정하고 석방하겠다고 하였다.

    경찰서장이 그와 같은 엄청난 량의 보증서를 요구한것은 차후 상급에서 문제시하는 경우 책임을 회피할 증빙문건을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경찰서장은 구장과의 《우정》때문에 체면상 《량민보증서》를 받아오면 석방시키겠다고 약속하였지만 속으로는 그것이 도저히 실행될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사실 500명이 서명한 량민보증서를 작성한다는것은 참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였다. 《불온분자》로 지목된 사람을 량민으로 인정하는 보증서에는 누구든 함부로 손지장을 누르려 하지 않는것이 보편적인 심리였다.

    그런데 그처럼 어려운것으로 되여있던 《량민보증서》가 며칠이 지나서 경찰서장의 책상우에 놓이게 되였다. 깜짝놀란 경찰서장은 하는수 없이 김정숙동지를 석방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때를 회고하시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만일 김정숙이 인민에게 참다운 사랑을 바치지 않았더라면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인민은 그를 돌아보지도 않았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러고보면 500명의 인장이 찍힌 량민보증서는 그가 인민의 참된 충복임을 증명하는 영원한 증서라고 해야할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 어떤 강권이나 금전보다 더 위력한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가 깃든 《량민보증서》, 그것은 언제나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사랑과 정을 고스란히 바치신 김정숙동지에 대한 도천리인민들의 진정한 보답과 의리의 증서였다.

    한생을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인민들의 몸과 마음을 태양의 빛발로 덥혀주며 자신을 깡그리 바치신 바로 여기에 세상사람들모두가 감탄하는 김정숙동지께서 지니신 위인적풍모의 특출한 인간적매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