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수예의 발전력사에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불면불휴의 로고가 뚜렷이 새겨져있다.
항일무장투쟁시기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중에서 한가지만 여기에 소개한다.
주체32(1943)년 10월초 어느날 김정숙동지게서는 녀대원들에게
그림에는 금강산 기암절벽, 대굵은 소나무와 단풍나무, 학과 사슴, 꿩, 기름진 황금벌과 과일밭 등이 그려져있었다. 그림의 밑부분에는 《조국을 그리며 1943》이라는 글발이 씌여져있었다.
누가 그린 그림인가고 이구동성으로 물어보는 녀대원들에게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그림은 내가 그려본것인데 수를 놓기 위한 도본이라고 하시였다.
녀대원들로부터 한결같은 지지와 찬동을 받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날부터 훈련과 일과생활에 빠짐없이 참가하시면서도 모든 짬시간을 최대한 리용하여 흰 광목천에 한뜸한뜸 정성담아 수를 놓으시였으며 20여일만에는 수예작품을 훌륭하게 완성하여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해방후 새 조국건설시기에도
민족수예의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도록 하기 위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우선 수예창작 및 연구기지를 내오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주체35(1946)년 4월10일 《문화복장원》의 일군들을 만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예는 섬세함과 정결함을 키우는 좋은 습작이며 고상하고 훌륭한 예술품으로 된다고 하시면서 수예를 하는 녀성들을 체계적으로 키워내야 한다고 하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지도밑에 짧은 기간내에 능력있는 수예집단이 조직되여 수예창작활동을 본격적으로 벌려나가게 되였다.
여기에 토대하여 민족수예연구소를 꾸릴 결심을 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문화복장원》에 소속되여있던 수예연구소를 중앙수예연구소로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에 힘을 넣으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정력적인 지도밑에 주체37(1948)년 2월1일 중앙수예연구소가 창설되였다.
민족수예의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도록 하기 위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음으로 수예가들이 항일선렬들의 투쟁정신과 투쟁기풍을 따라배우 도록 하는데 힘을 넣으시였다.
어느날 한 녀성이 풍경화에 나팔꽃을 수놓는것을 보시고 김정숙동지 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녀성유격대원들은 《조국의 진달래》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수를 많이 놓았다고 하시며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새 조선의 봄을 안고 더욱 붉게 피여나는 조국의 진달래를 수놓으면 뜻이 깊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주체37(1948)년 어느날에도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예가들에게 지난날 항일무장투쟁시기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수를 잘 놓을데 대하여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세심한 가르치심을 받으며 수예가들은 조선인민혁명군 녀대원들이 생사를 판가리하는 항일대전의 나날에도 수까지 놓으며 수예활동을 벌려온것처럼 훌륭한 수예작품을 창작하여 새 조국건설에 이바지할 불타는 결의를 다지였다.
민족수예의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도록 하기 위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음으로 혁명적수예작품을 창작하도록 하는데 힘을 넣으시였다.
혁명적수예작품창작을 위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예가들을 자주 만나시여 그들의 가슴속에
김정숙동지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우리 나라 수예력사에서 처음으로
혁명적수예작품창작을 위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수예작품들에
보통강개수공사장에 보낼 우승기를 만들 때였다.
수예가들이 우승기도안을 어떻게 할지 몰라 토론을 거듭하다가 김정숙동지께 도와달라고 청을 드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에게 우승기에는 반드시
그러시면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우승기가 단순히 경쟁을 위한 순회우승기가 아니라 인민들에게
혁명적수예작품창작을 위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몸소 수를 놓으시며 그 본보기를 마련하시였다.
이에 대하여서는 김정숙동지께서 손수 수를 놓아 만드시여
주체37(1948)년 가을 김정숙동지께서는 며칠동안 짬짬이 여러장의 종이우에 그림을 그리시였다. 그 그림들을 미리 장만하신 비단천우에 옮겨 그리시고 비단실에 여러가지 색갈의 물감을 들이시였다.
이렇게 수놓이준비를 마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모든 정성을 쏟아부으시며 보통 석달이상이나 걸려야 할 일감을 두달동안에 완성하시여
김정숙동지께서 손수 수를 놓아 만드신 이불, 그것은
이처럼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장 간고하고 어려웠던 항일무장투쟁시기와 해방후 새조국건설시기 민족수예를 발전시킬데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