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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부(1565-1624)는 임진조국전쟁시기 함경도인민들의 의병투쟁을 조직지휘한 의병장의 한사람이다.

    1588년에 문과에 합격하였고 함경도 북평사로 임명되였다. 그가 함경도 경성에 있을 때인 1592년에 조선에 침입한 일본침략군의 일부는 함경도에까지 기여들었다.

    그는 리봉수, 최배천 등과 함께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애국적인민들을 투쟁대오에 받아들였다. 그의 의병부대는 국세필을 비롯한 반역자들을 처단한 다음 경성을 장악하고 뒤이어 명천의 적도 쳐물리쳤다. 의병부대는 그의 지휘밑에 1592년 10월에 길주, 장평, 석현 전투들에서 적의 대부대를 섬멸하고 길주성을 포위하였다. 한편 12월에 그는 일부 부대로 쌍포(김책시 쌍포동)에서 적을 격멸하였다. 투쟁과정을 통하여 의병부대는 5 000여명으로 장성강화되였다.

    그는 부대의 일부를 보내여 단천의 적을 무찌르는 싸움을 돕게 하였다. 1593년 1월 의병부대는 적들이 몇달동안 길주성안에 갇혀있던 저들의 남은 무리들을 구원해내기 위하여 보낸 지원부대를 백탑(김책시)에서 섬멸함으로써 일본침략자들을 함경도지역에서 완전히 소탕하였다.

    그는 의병부대를 지휘함에 있어서 매복, 기습 전술을 잘 썼고 기병과 보병의 배합전술도 잘 적용하였다. 의병투쟁에서 그의 공적은 매우 컸으나 비겁한 순찰사 윤탁연은 그의 전투공로를 시기하여 그가 봉건정부를 반대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고 거짓말을 꾸며서 그를 고발하였다. 이때문에 그는 한때 의병장자리에서 파면되였다가 부하들의 강력한 항의로 다시 회복되였으며 후에는 온성부사, 길주목사 등 여러 고을의 장관벼슬을 지냈다. 당파싸움을 일삼고있던 봉건통치배들은 1624년에 그가 지은 시에 국왕을 배반하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헐뜯어 투옥되였으며 가혹한 고문을 받고 옥사하였다. 저서로서 《농포집》이 있는데 이 책은 임진조국전쟁연구에 참고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