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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만 5천여리라는 수자는 누구나 쉽게 부를수 있는 수자가 아니다.

    백두산에서 한나산까지 301번 왕복한것과도 같고 지구를 14바퀴반이나 돌수 있는 거리와도 같은 이 수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해방직후부터 위대한 혁명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이어가신 현지지도거리이다.

    인민들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시며 언제나 그들속에 계시면서 사랑과 행복만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주체83(1994)년 7월 6일이였다.

    이날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한평생에 대하여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나는 지금까지 인민을 믿고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인민들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나의 한생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바쳐온 한생이였으며 인민들과 함께 투쟁해온 한생이였습니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위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일관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새겨안는 일군들의 가슴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공장에서 농촌으로, 도시에서 지방으로, 학교에서 구분대로, 이 땅의 이르는 곳마다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끝없는 사랑과 헌신의 자욱을 수놓으시였다.

    공장에 가시여서는 생산실태를 료해하시기 전에 먼저 로동자들의 생활조건부터 알아보시고 농촌에 가시여서는 농민들의 현금수입정형부터 알아보신분도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에는 우리도 조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시며 잡곡밥을 달게 드신 이야기, 여러 농장포전을 한낮이 기울 때까지 돌아보시느라 때늦게야 렬차에서 풋강냉이로 점심식사를 하신 이야기, 인민을 위한 길인데 무엇을 가리겠는가고 하시며 신발이 감탕속에 쑥쑥 빠지는것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간석지에 첫길을 내신 이야기…

    일군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의 자욱자욱을 돌이켜보며 숭엄한 격정속에 휩싸여있는데 그이께서는 교시를 이으시였다.

    나는 앞으로도 언제나 우리 인민들과 함께 있을것입니다!

    바로 이런 분이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군의 상점에 들리시였을 때에도 상업일군들이 물건을 파는데만 머리를 쓰지 말고 사가는 사람의 립장에 서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고 나라의 천생산계획을 세우실 때에도 자신의 수첩에 세대당, 한사람당 차례질 량까지 일일이 계산해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의 자욱우에 수놓아진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은 오늘도 위대한 어버이의 숭고한 헌신의 세계를 감동깊이 전하고있다.

    하기에 조선인민은 물론 세계 진보적인민들도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에 대한 사랑의 력사를 수놓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에 대하여 끝없이 격찬하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