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운동은 모든 문제를 변화발전하는 현실과 나라의 구체적조건에 맞게 풀어 나갈것을 요구합니다.》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그 하나는 모든 문제를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는 시대적조건에 맞게 풀어나가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개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맞게 풀어나가는것입니다.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이 이처럼 두가지 내용을 가지게 되는것은 혁명과 건설이 진행되는 시대적환경이 끊임없이 변한다는것과 또 나라마다 혁명과 건설이 벌어지는 조건이 다르기때문입니다.
혁명과 건설이 진행되는 시대는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발전합니다. 따라서 혁명과 건설이 진행되는 시대적조건은 결코 동일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매개 나라 인민들이 혁명과 건설을 잘 하자면 변화발전하는 시대적조건을 타산하고 거기에 맞게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계절이 달라지면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는것과 같은 리치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매개 나라의 혁명과 건설은 각이한 시대적조건에서 벌어 질뿐아니라 서로 다른 구체적환경과 조건에서 진행됩니다. 혁명과 건설은 민족국가단위로 진행되는데 매개 나라는 걸어 온 력사가 다르고 경제발전수준과 자연지리적조건도 다르며 사람들의 의식수준과 심리, 풍습과 생활방식도 다릅니다.
나라마다 혁명과 건설이 벌어지는 구체적환경이 이처럼 각이한 조건에서 모든 나라에 다 들어맞는 처방이란 있을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리유로 해서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이 제기되는것입니다.
그러면 혁명과 건설을 실정에 맞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혁명과 건설을 실정에 맞게 하자면 무엇보다도 자기 나라 혁명의 주객관적조건을 잘 타산하고 그에 맞게 로선과 정책, 전략전술을 규정하여야 합니다.
혁명과 건설을 하려면 먼저 로선과 정책, 전략과 전술부터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로선과 정책, 전략과 전술을 잘 세우는 비결은 자기 나라 혁명의 주객관적조건을 잘 타산하는데 있습니다. 혁명의 주객관적조건이라는것은 혁명정세와 사회경제적형편, 적아간의 력량관계와 인민대중의 준비정도 등 혁명이 일어나고 승리하는데 필요한 요인들을 말하는데 그것은 매개 나라마다 서로 다릅니다. 그런것만큼 자기 나라 혁명의 주객관적조건을 옳게 타산하지 못하면 로선과 정책을 바로 세울수 없으며 혁명과 건설에서 이러저러한 오유를 범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혁명과 건설을 잘해나가자면 우선 자기 나라 혁명의 주객관적조건을 구체적으로 타산한데 기초하여 그에 맞게 로선과 정책, 전략과 전술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혁명과 건설을 실정에 맞게 하기 위한 첫 공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혁명의 주객관적조건을 타산하는데서 언제나 보다 큰 의의를 부여하여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혁명의 주객관적조건을 타산하는데서 주체적인 혁명력량이 어떻게 준비되여 있는가 하는데 선차적인 주목을 돌려야 한다는것입니다. 왜냐하면 혁명승리의 결정적요인은 객관적조건이 아니라 주체적요인, 주체적혁명력량이기때문입니다. 물론 혁명과 건설에서는 객관적조건의 영향도 무시할수 없습니다.그러나 객관적조건이 유리한가,불리한가 하는것만을 절대화하면서 주체적인 혁명력량을 튼튼히 준비시키지 않으면 혁명은 승리할수 없습니다.
조선에서 전후 농촌경리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는 문제가 제기되였을때 일부 사람들은 나라의 공업화를 하지못한 조건에서 농촌경리를 어떻게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겠는가고 하면서 그것을 반대해나섰습니다. 그것은 당시까지만 하여도 경리형태의 사회주의적개조는 공업화를 한 기초우에서만 할수 있다는것이 하나의 공식으로 되여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그러나
혁명과 건설을 실정에 맞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으로 기성리론에 옳게 대하여야 합니다.
기성리론은 이미 지나간 력사적시기의 혁명실천에 기초하여 나온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새로운 력사적조건에서 벌어지는 혁명과 건설에 그대로 적용할수 없습니다. 약도 이전에는 잘 듣던것이 지금은 별로 효과가 없는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약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리적조건이 달라 질수 있고 또 약에 반응하는 성질도 달라질수 있으니 그럴수밖에 없습니다. 혁명과 건설을 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혁명과 건설이 진행되는 시대적조건은 달라졌는데 이전의 방법이 그대로 들어맞을수는 없는것입니다. 그러므로 혁명과 건설을 자체의 실정에 맞게 하기 위해서는 기성리론에 옳게 대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나서게 되는것입니다.
그러면 기성리론에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기성리론을 대하는데서는 언제나 그것이 어떤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어떤 혁명실천의 전제밑에서 나왔는가를 따져보고 자체의 특성에 맞게 적용해야 합니다.
어떤 사상과 리론을 물론하고 그것은 일정한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일정한 혁명실천의 전제밑에서 나오게 됩니다. 실례로 맑스주의는 발전된 유럽자본주의나라들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로동계급이 자본의 착취와 압박을 반대하는 투쟁에 일떠선 력사적시기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왔으며 레닌주의는 제국주의와 프로레타리아혁명시기의 요구를 반영하여 뒤떨어진 자본주의나라였던 로씨야를 전제로 하여 나왔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상과 리론이 일정한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고 또 일정한 사회경제적전제밑에서 나오는것만큼 기성리론을 적용할수 있는가 없는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나오게 된 력사적조건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하는것입니다.
혁명과 건설을 지도하는데서 발을 붙여야 할것은 기성리론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구체적현실입니다. 문제는 기성리론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 실정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기성리론에서 오늘에도 의의가 있는것은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제도 그렇게 했으니까 오늘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혁명투쟁의 창조적성격에 맞지 않는것입니다.
혁명과 건설을 실정에 맞게 해나가기 위해서는 다음으로 새로운 력사적조건과 자기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맞게 새로운 원리와 방도들을 적극 탐구해야 합니다.
혁명과 건설이 심화되고 발전하는데 따라 새롭게 풀어야 할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됩니다. 혁명이란 낡은것을 없애고 새것을 창조해 나가는 끊임없는 투쟁과정인것만큼 혁명과 건설이 심화됨에 따라 새롭게 풀어야 할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것은 필연적입니다.
오늘 세계적으로 놓고 보아도 랭전의 종식과 더불어 좌절된 사회주의운동을 어떻게 재생시켜야 하는가, 정보산업의 발전과 함께 육체로동자들의 수가 줄어들고 인테리대렬이 늘어나고 있는 조건에서 혁명력량을 어떻게 편성해야 하는가, 날로 횡포해지는 제국주의자들의 《세계화》책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등 새롭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수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매개 나라 인민들은 자기 나라의 구체적실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을 푸는 원리와 방도들을 적극 탐구해야 혁명과 건설을 끊임없이 전진시켜나갈수 있습니다.
혁명과 건설을 실정에 맞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으로 남의 경험을 비판적으로, 창조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혁명과 건설에서 남의 경험이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경험이 있으면 그것을 참고로 하여 혁명과 건설을 더 잘해나갈수 있습니다. 생소하게 하는 일보다 이미 해놓은 경험을 참작하는것이 더 쉽고 빠르다는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오늘 혁명과 건설이 나라마다 진행되고 매개 나라는 혁명과 건설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창조합니다. 그러므로 매개 나라의 당과 인민들은 서로 다른 나라의 경험을 요구하고 참작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의 경험은 어디까지나 그 나라의 구체적조건에서 창조된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남의 좋은 경험이라고 해도 자기 나라에 꼭 들어맞을리가 없습니다. 남의 경험에는 자기 나라에 필요하고 유익한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것도 있으며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는것도 있고 맞지 않는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경험에 비판적으로, 창조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남의 경험에 비판적으로, 창조적으로 대한다는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것이겠습니까?
흔히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씹어 보고 자기의 구미에 맞고 달면 삼키고 자기 구미에 맞지 않고 쓰면 뱉아버립니다. 혁명과 건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나라의 경험가운데서 자기에게 리로운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못한것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남의 경험이 자기에게 리로운것이라고 하여 통채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남의 좋은 경험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그것을 통채로 삼킬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게 개작하고 변형하여 받아들이는 립장을 지켜야 합니다. 남의 경험을 참고하여야 하지만 제일 좋기는 될수록 자체의 경험을 잘 살려나가는것입니다. 자체의 경험은 자기 나라의 실정을 반영한것이기때문에 자기 나라의 혁명과 건설에서 유익하고 쓸모가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의 경험에는 자기 인민의 요구와 자기 나라의 실정이 반영되여있기때문에 인민들이 쉽게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남의 경험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것은 아닙니다. 남의것을 무턱대고 본따려 하거나 또 남의 좋은 경험을 허심하게 배우려하지 않는것은 다 잘못입니다. 문제는 어떤 립장에서 남의 경험에 대하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주체사상이 반대하는것은 창조성을 잃고 남의 경험을 덮어놓고 숭배하며 자기 실정에 맞지 않는것까지 통채로 삼키거나 수입하는 교조주의적태도입니다.
교조주의는 자기가 처한 구체적현실과 조건을 타산하지 않고 일반명제를 그대로 적용하거나 남의것을 기계적으로 옮겨다 놓는 태도입니다. 교조주의는 자기 나라 혁명발전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옳은 로선과 정책을 세울수 없게 하며 결국 혁명과 건설을 잘할수 없게 합니다. 그러므로 매개 나라 인민들은 남의 경험을 무비판적으로, 교조주의적으로 대하고 받아 들이는 그릇된 사고관점과 태도를 철저히 배격하여야 합니다.
창조성을 구현하여 모든것을 자체의 실정에 맞게 풀어나가는 방법, 실로 이것은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배격하고 혁명과 건설을 성과적으로 수행해 나갈수 있게 하는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