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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이 즐긴 칼춤

    칼춤은 민족무용유산들가운데서도 그 력사적연원이 오래고 조선인민이 가장 즐겨온 춤형식의 하나이다.

    칼은 인간이 가장 이른시기에 창조발명한 로동도구이며 무기이다.

    칼이 사람들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생활도구로 리용되여오는 과정에 칼춤도 추어지게 되였다. 고대로부터 전해진 칼춤은 삼국시기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조국을 수호하며 삼국통일의 력사적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고구려인민들의 투쟁과정에 상무기풍이 확립됨으로써 보다 성행하였는데 그것은 고구려벽화무덤들에 칼춤을 추는 모습이 생동하게 묘사되여있다. 옛문헌인 《동경잡기》에 소년무사가 칼춤을 추었다는 설화가 있는것은 고구려의 영향하에 백제와 신라에서도 칼춤이 성행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삼국시기에 조선인민들속에서는 칼을 한손에 들고 추는 칼춤, 량손에 들고 추는 칼춤, 가면을 쓰고 칼춤을 추는 가면검무 등 다양한 형식의 칼춤들이 추어졌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 칼춤이 더욱 발전하였다. 17~18세기에는 민간의 기녀들이 추는 칼춤이 널리 추어졌는데 신광수(1712년-1775년)의 문집인 《석북집》, 정약용(1762년-1836년)이 지은 시 《칼춤》, 사실주의화가 신윤복(1758년-?)이 그린 풍속도《칼춤》, 실학자 박제가(1750년-1805년)가 쓴 《묘향산기행》의 《검무기》 등 많은 시와 그림들에 칼춤에 대한 기록이 있다. 조선의 칼춤은 두명의 춤군이 량손에 칼을 들고 마주서서 추는 형식으로 추어졌으며 《평양칼춤》, 《향산칼춤》, 《해주칼춤》, 《진주칼춤》 등이 알려졌다.

    이 춤은 량손에 칼을 들고 휘두르기, 돌리기, 찌르기, 메기, 내리치기 등 다양한 칼놀림기법들이 수행되지만 구성이 째이고 예술적감화력도 높았다.

    조선인민의 사랑속에서 널리 공연된 칼춤은 근로대중의 애국심을 더욱 높여주고 정서생활을 풍부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오랜 력사적연원을 가지고 끊임없이 발전하여온 조선민족의 칼춤기법들은 오늘 조선로동당의 옳바른 문예정책에 의하여 모두 발굴정리되였으며 그에 토대하여 재형상된 민속무용 《칼춤》은 국내외무대들에서 조선인민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속에서 커다란 경탄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