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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첫 세대 문필혁명투사들

    항일혁명의 길을 피로써 개척한 혁명전위들속에는 붓대포의 위력을 떨친 유명무명의 렬사들이 있다.

    조선혁명의 승리적전진과 혁명적출판물의 전통을 이룩하는데 기여한 그들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수십년세월이 흐른 뒤에도 잊지 않으시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갈피마다에서 그 이름들을 소중히 떠올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우리의 출판보도부문 일군들이 메달 하나 달아보지 못하고 돌아간 혁명적출판계의 제1세들을 잊지 말아줄것을 당부하고싶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추억하신 혁명적출판계의 제1세들속에는 카륜과 오가자시절의 막역지우였던 김혁, 최일천동지들도 있다.

    《볼쉐비크》의 주필이였던 김혁동지는 원고집필을 할 때면 밤잠을 잊군 하였다. 그는 《볼쉐비크》에 자기가 작사, 작곡한 혁명적인 노래들도 편집해넣었다. 불덩이같은 정열가였던 김혁동지는 좀처럼 휴식이라는것을 몰랐다.

    김혁동지의 글이 호방하고 격동적이였다면 《농우》의 주필이였던 최일천동지의 글은 민족적인 색채가 짙으면서도 지성도가 높고 분석이 예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잊지 못해 회고하신 최일천동지는 김혁동지와 쌍벽을 이루는 재능있는 문장가였다.

    최일천동지는 귀중한 력사자료인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에 자신의 온넋과 재능을 기울여 《〈ㅌ.ㄷ〉와 김일성》이라는 력사의 엄연한 진실을 수록하였다.

    조국광복회기관지 《3.1월간》의 주필이였던 리동백동지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력사적행적을 매일 일기로 적었다. 한두끼 혹은 며칠씩 굶는적은 있었어도 그가 일기를 쓰지 않고 번진 날은 단 하루도 없었으니 리동백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스스로 지닌 조선인민혁명군 력사저술가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모든것을 바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대내기관지 《서광》의 주필이였던 김영국동지도 젊고 재능있는 문필가였다. 김영국동지를 도와 《서광》의 편집과 발간에 적극 참가한 림춘추동지도 열성필자였다.

    《종소리》의 주필 최경화동지는 또 어떠하였던가.

    글재주도 뛰여나고 그림도 썩 잘 그리는 보기 드문 재사였던 그는 《종소리》삽화의 대부분을 직접 그려넣었다.

    정치상학시간에는 강사로 나섰고 전투장에서는 선참으로 돌격에 나서군 하는 선봉투사 최경화동지를 적들과의 싸움에서 잃었을 때 훌륭한 전우를 잃은것이 너무도 애석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추도사를 쓰시였다.

    리동백, 김영국, 최경화동지와 같은 쟁쟁한 필진들이 다 곁을 떠났던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내의 반일청년동맹기관지였던 《철혈》발간을 강위룡동지에게 위임하시였다.

    항일혁명시기의 출판물들이 독자대중의 훌륭한 선전자, 교양자로 되였을뿐아니라 영웅적위훈의 고무자로 되고 투쟁의 적극적인 방조자, 생활의 친근한 길동무로 될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성장한 이런 문필혁명투사들이 있었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추억속에 영생하는 첫 세대 문필혁명투사들은 오늘도 모든 기자, 언론인들이 우리의 사상, 우리의 제도, 우리의 위업을 옹호고수하는 혁명의 필봉을 억세게 틀어쥐고나가도록 격려해주며 앞장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