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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시 고려동의 아늑한 산탁에 《래봉장》이라고 부르는 단층기와집이 있었다.

    이 《래봉장》에서 1951년 7월초 오전 정전담판의 예비회담이라고 할수 있는 쌍방련락군관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는 정전담판장소, 숙소, 공급, 기타 문제들이 토의되고 정전담판 쌍방대표들의 명단이 통고되였으며 이틀이 지난 1951년 7월 10일 오전 10시에 조선정전담판 본 회담 첫 회의가 진행되였다.

    이 회담에 참가하기 위해 《유엔군》측 수석대표인 미극동 해군사령관 씨 터너 죠이중장을 비롯한 여러명의 장령들이 선발되였다.

    《유엔군》측 대표단은 담판장으로 오기 위해 문산을 떠날 때 굉장한 환송을 받았다.

    먼저 일본에 도사리고있던 《유엔군》사령관 릿지웨이가 비밀리에 문산으로 날아와 저들 대표들에게 《우리는 최강의 군대이다.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된다.》고 력설하면서 《영예로운 휴전》을 성사시키라고 침을 놓았다. 그리고는 적측 수석대표 죠이와 함께 회담장으로 타고갈 직승기에까지 나란히 걸어가서 그를 배웅해주었다. 또한 문산기지에 있는 적장병들도 모두 떨쳐나서 소리지르며 대표단이 떠나는것을 바래웠다. 문산에 몰려든 150여명의 적측 기자들은 이 요란한 광경을 보고는 미국이 달성하려는 《영예로운 휴전》은 시간문제라고 억측하면서 남먼저 원고를 쓰기에 분주하였고 《수주일내에 이루어질 휴전날자》를 놓고 저들끼리 술내기도 걸었다.

    직승기로 조선측 지역(판문점)에 들어온 《유엔군》측 대표들은 찦차에 흰기를 앞에 달고 개성시가를 거쳐서 《래봉장》으로 갔다. 그들보다 앞서달리는 3대의 화물자동차에는 새 군복을 입은 인민군병사들이 타고있었는데 그들은 특이한 행렬을 바라보는 개성시민들에게 미소를 띠우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담판장에 들어서는 쌍방대표들의 모습은 판이하였다.

    조선측 대표들의 얼굴에서는 승리자의 도도한 기상과 심판관의 위엄이 풍기고있었으며 반대로 어깨가 처지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미국측 대표들의 낯짝에는 패배자의 수치심이 어려있고 피고석에 끌려온 범죄자의 가련하고 불안한 심리가 력력히 찍혀있었다.

    조선측 대표들은 북쪽 문으로 들어와 남쪽을 향한 북쪽 걸상에 자리잡았고 미국측 대표들은 북쪽을 향한 남쪽 걸상을 차지하였다. 그뒤를 이어 참모들, 기술일군들이 각각 30명씩 회의장으로 들어와 자기 직분에 맞게 자리를 차지하였다.

    자리배치상태를 일별하던 《유엔군》측 수석대표 죠이는 오만상을 찌프렸다. 전승국이 회담장의 북쪽자리를 차지하고 패전국은 남쪽자리를 차지하는것이 동양의 풍습이라는것을 알고있었던 모양이였다. 하지만 죠이자신이 스스로 고백했던것처럼 《개성회담은 승자인 적군(인민군을 말함)과 패배자인 미군과의 회담》이였으므로 어쩔수 없었다.

    회담탁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와 미제가 도용한 《유엔》기가 1:1로 마주 서있었다.

    결국 이것은 그때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존재자체를 인정하지 않고있던 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을 공식 인정하고 굴복했다는 표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