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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1676-1759)은 18세기의 이름난 사실주의적풍경화가이다.

    가난한 선비의 가정에서 태여난 정선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집안살림을 자기 손으로 꾸려나갔다.

    그는 훌륭한 화가가 되려는 굳은 결심을 품고 짬만 있으면 그림을 그리였는데 거기에 열중하던 나머지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고 한다.

    매일 보는 주변풍경이건만 정선에게는 그것이 볼수록 아름다왔다. 그는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나라에서 태여난것을 행복으로 생각하였으며 그때마다 그것을 그림에 담고싶은 충동을 느끼였다.

    자기 조국의 산천경개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날을 따라 더욱 깊어갔으며 그의 재간은 늘어 어느덧 도화서의 화원으로 되였다.

    그는 주로 풍경화를 그리면서 자기의 독특한 화풍을 개척하였다.

    정선은 량반출신선비들과는 달리 현실에 직접 뛰여들어가 거기에서 보고 느낀것을 그리였다.

    이와 같은 창작태도는 그의 창작의 특징으로 되는 형상의 진실성과 소재의 다양성을 낳게 한 기본요인으로 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 조선의 풍경화는 정선에 의하여 비로소 구체적인 지명을 밝히게 되였다. 그 이전까지의 풍경화는 모두 《산수화》 또는 《인물산수화》라는 일반적인 화제로 되여있었다. 정선의 많은 그림에는 그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지명이 붙었는데 례하면 《금강산 전도》, 《만폭동》 등 조선의 명승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접하는 친근한 지명들이였다.

    실로 그는 금강산을 비롯하여 호수, 보슬비내리는 날 기러기떼 날으는 가을풍경 그리고 계절따라 서로 다르게 변하는 조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생동하고 다양하게 화폭에 담았다. 그렇기때문에 정선의 화폭에는 한그루의 나무, 하나의 돌, 한포기의 풀에 이르기까지 조국강토에 대한 화가의 열렬한 사랑이 맥박치고있다.

    정선은 또한 조선화의 풍부한 묘사기법을 널리 활용하여 금강산을 비롯한 조국의 아름다운 경치를 높은 경지에서 조형예술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른 봄 소리없이 내리는 봄비에 옷이 젖는줄도 모르고 하늘소에 앉아 정신없이 책을 읽는 나그네-선비의 형상도 그러하지만 겨우내 얼어붙었던 늙은 버드나무의 잔가지들에 갓 오르기 시작한 물기와 가는 비발속에 잠겨있는 농가들의 어슴푸레한 정경은 높은 수준에 이른 조선화의 발전모습을 그대로 실증해주고있다.

    이처럼 정선은 조선 회화사에서 새로운 풍경화를 개척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