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방위자들이 발휘한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불굴의 희생정신은 조선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에게 있어서 훌륭한 귀감으로 되며 그들의 고상한 전투도덕적품성은 전쟁의 어려운 국면에 대처하여 과감히 싸우고있는 모든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을 크게 고무하였다.
월미도방위자들은
조선인민군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조국강토에서 완전히 쫒겨날 위험에 직면한 미제침략자들은 저들의 참패를 기어이 만회하기 위하여 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여 락동강전선에서 《총공세》를 감행하는 한편 인천지구에서 대규모적인 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적들은 인천상륙작전에 5만여명의 대병력과 300여척의 함선, 약 1 000대의 비행기를 동원하였으며 일본군국주의자들까지 끌어넣었다.
당시 월미도에는 1개의 해안포중대와 1개의 보병중대가 방어하고있었다.
적들은 우선 인천의 관문인 월미도(0.66Km²)에 9월 10일부터 수많은 비행대와 각종 함선의 엄호밑에 80여척의 경비정, 상륙정, 상륙함 등에 미제침략군 10군단의 선견대를 태워 월미도에 들이밀기 시작하였다.
1 100여발의 적의 함포탄이 우박처럼 떨어지고 온 섬이 타번지는 속에서도 월미도의 해안포병들은 조금도 당황함이 없이 적함선을 800m거리까지 접근시켜놓고 불의에 사격을 개시하였으며 보병중대전투원들은 대구경기관총과 중기관총들로 월미도에 거의 다달은 적의 선견대에 명중탄을 들씌웠다.
아군의 세찬 화력에 얻어맞은 적들은 도망가고 말았으며 첫 전투에서 월미도방위자들은 적의 구축함 2척을 격파하고 소함정 2척을 격침시키는 위훈을 세웠다.
9월 14일 적들은 3시간에 걸쳐 1 730여발의 함포사격과 무차별적인 폭격을 감행한데 이어 다시 월미도로 기여들기 시작하였다.
이날 전투에서도 해안포병들은 명중탄으로 적 구축함 1척을 격침시킨 다음 련속적인 명중사격으로 적의 상륙함 2척, 상륙정 4척을 또 격침시켜 적들의 상륙기도를 파탄시켰다.
이날 전투에서 월미도방위자들속에서 희생자들이 생기고 포 2문이 파괴되였으며 인천과 월미도사이의 통로가 차단되였다.
그러나 월미도방위자들은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15일 전투에서도 용감히 싸웠다.
두번에 걸친 상륙전에서 실패한 적들은 100차례이상의 비행대를 동원하여 폭격하였으며 상륙하기전에는 폭격과 포격을 미친듯이 진행하고 월미도로 기여들었다.
월미도의 해안포병들과 보병들은 1문밖에 남지 않은 포로 마지막포탄이 없어질 때까지 적함을 쏘았으며 중기관총, 경기관총, 기관단총으로 적의 상륙정들에 집중사격을 퍼부어 적상륙정 2척을 격침시키고 적의 선견대를 무리로 쓸어눕혔다. 나머지 1문의 포까지 쓸수 없게 되자 월미도의 영웅적방위자들은 마지막 결사전에 나섰다.
월미도방위자들은 최후결전장에 나서면서 조국의 영예를 지켜 끝까지 싸우겠다는 절절한 심정과 굳은 결의를 담아 마지막전보문을 날리고 달려드는 적땅크를 맞받아 나가 반땅크수류탄으로 까부셨으며 치렬한 육박전으로 적들을 무리로 쓸어눕혔다.
월미도방위자들은 3일간의 전투에서 적구축함 3척을 포함하여 각종 함선 13척을 격침격파하고 적의 상륙을 지연시킴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