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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의 창조적재능이 깃든 측우기

    측우기는 리조시기(1392년-1910년)인 1441년에 발명하여 리용한 강우량(비내림량)측정기구이다.

    측우기가 나오기전에 조선에서는 비가 온 후 비물이 땅속에 스며든 깊이를 재는 방법으로 강우량을 측정하였다.

    그런데 비물이 땅속에 스며드는 깊이는 토질에 따라 서로 달랐으므로 비가 내린 절대량을 정확히 알수 없었다. 이러한 실정으로부터 여러가지 탐구가 진행되던 끝에 1441년 8월 강우량을 정확히 측정할수 있는 기구인 높이 2자(약 40cm), 직경 8치(약 16cm)의 쇠로 된 측우기가 발명되였다.

    측우기는 둥근통모양의 그릇을 대우에 올려놓고 비물을 받아 그 량을 재게 되여있다. 이러한 측우기를 중앙과 지방의 관청마당안에 설치하였는데 중앙에서는 철이나 동으로 만들고 지방에서는 사기 또는 진흙으로 만들어 강우량을 관측하였다.

    각 고을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 시간과 개인 시간 및 그동안의 강우량을 측정하여 해당 도에 보고하고 각 도에서는 중앙의 서운관에 집결시켜 장악하고 기록하는것을 제도화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에서는 1441년에 측우기에 의한 강우량에 대한 관측사업이 중앙과 지방에서 전면적으로 실시되였다. 측우기는 그후 여러번에 걸쳐 개작되였다.

    측우기에 의한 과학적인 강우량측정방법과 측정결과를 종합하는 제도는 세계적으로 조선이 제일먼저 창안하고 도입한것이였다.

    이딸리아의 베네데또 까스뗄리가 기구를 가지고 비물의 깊이를 측정한것은 1639년이였으며 측우기를 전국적규모에서 설치하고 강우량을 중앙에서 종합적으로 장악하는 제도를 세운것은 그보다도 훨씬 후의 일이였다. 이렇게 놓고볼 때 조선에서 창안리용한 측우기는 이보다 약 200년 앞선것으로 된다.

    측우기의 발명은 기상학분야에서 조선인민의 창조적재능을 보여주는 세계적인 발명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