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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출신의 애국명장 을지문덕

     을지문덕(6세기말-7세기초)은 7세기초 수나라대군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위훈을 세운 고구려의 애국명장이다. 평양출신인 을지문덕은 어려서부터 용감하고 침착하고 무술에 능하였으며 글짓기도 잘하였다. 그는 후에 고구려의 대신급의 높은 벼슬을 하였다.

    612년 3월에 수나라침략군 수백만이 고구려에 침입하여왔을 때 을지문덕은 고구려군대를 총 지휘하였다. 그는 수나라침략군이 수백만대군을 동원하여 침공해오는것만큼 료하 동쪽대안에 있는 중요한 성들로 이루어진 고구려의 기본방어선을 강화하여 이 계선에서 적들의 침략기도를 파탄시키려고 하였다.

    적들은 그해 4월 중순 막대한 희생을 내면서 료하를 도하한 후 료동성으로 밀려들었다.성안의 고구려군민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전투는 료하계선의 여러 성들에서 치렬하게 벌어졌다. 을지문덕은 능숙한 전투지휘로 적들을 오래동안 료동성부근에 얽어매놓음으로써 적의 공격을 좌절시키였다.

    수양제는 료동성전투가 장기화되자 우중문과 우문술을 지휘자로 하는 9군(30만5 000명)을 따로 편성하여 고구려의 종심깊이까지 침투시키는 한편 산동반도로부터 수군을 출발시켜 륙지와 바다로 고구려의 부수도 북평양(봉황성)을 함락시키려고 하였다. 적들의 기도를 알아차린 을지문덕은 담판을 구실로 직접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내부실정을 탐지하였다. 이 과정에 그는 적장들사이에 의견상이가 있다는것과 적들이 식량난을 겪고있다는것을 꿰뚫어보고 유인전술과 청야수성전술을 배합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이룩하리라고 결심하였다. 을지문덕은 침략군이 통과할수 있는 길주변의 주민들을 성안에 옮기게 하고 식량과 집짐승 등 략탈당할수 있는 모든것을 깊숙이 감추게 하고 우물마저 메워버리게 한 다음 하루에 7번 싸워 7번 패하는척 하면서 퇴각하여 적들을 봉황성30리 지점까지 유인하였다. 극도로 피로한 적들의 사기는 저락되였으며 대렬은 혼란에 빠지게 되였다. 게다가 철옹성같이 튼튼한 봉황성을 보자 적들은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사기를 잃은채 오도가도 할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였다.

    을지문덕은 전 전선에 걸쳐 적들을 반격할수있는 완전한 전투준비를 갖추고 적장 우중문에게 침략군의 가련한 몰골을 야유하는 시 한수를 보내였다.

    

    신통한 전략은 천문을 꿰뚫었고

    기묘한 전술은 지리를 통달하였네

    싸움에서 이겨 공로가 이미 높거니

    만족함을 알고 돌아감이 어떠하리

    

    을지문덕의 이 시는 적들을 더욱 공포에 떨게 하였다. 사기가 심히 저락되고 식량까지 떨어진 적들은 퇴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을지문덕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은 퇴각하는 적들이 살수를 건늘 때 앞뒤에서 드센 공격을 들이대여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었다.

    이 살수에서 살아나 료동성계선까지 도망간자는 30만 5 000명중에 겨우 2 700여명에 불과하였다.

    612년 고구려-수전쟁에서 고구려군민의 애국적인 투쟁을 승리에로 이끄는데서 을지문덕은 이와 갈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그의 애국정신은 그후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조선인민들의 투쟁에서 고무적힘으로 되였다.

(200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