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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민들의 예술적재능이 깃든 조각유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한강토에서 하나의 피줄을 이어받으며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창조하며 화목하게 살아온 지혜롭고 애국심이 높은 민족입니다.》

    재능있고 슬기로운 고구려인민들은 자기의 고유한 풍속과 생활감정에 맞는 우수한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 우리 민족문화발전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동방문화를 꽃피우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력사적으로 전해져내려오는 고구려시기의 문화유물들은 고구려인민들의 슬기와 뛰여난 재능을 엿보이고 있다. 고구려시기의 대표적인조각유물로 알려져있는 《연가7년명금동일광3존불상》도 그중의 하나이다.

    평양의 고구려왕궁터에서 발굴된 이 유물은 아래부분에 세겹의 련꽃을 두른 둥근 받침대우에 배형광배(불교에서 존귀함을 표시하는 뜻으로 불상의 등뒤에 부각한 금빛부채살모양의 빛발)를 지고 서있는 세 부처로 이루어진 립상형식의 불상조각으로서 그 조형예술적우수성으로 하여 발굴초기부터 내외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조각은 돌, 금속, 나무, 석고 같은 재료를 가지고 묘사대상을 립체적으로 돋구어내는 하나의 조형예술형식이다. 조각이 다른 미술형태들보다 직관적표현성이 강한것은 대상의 모습을 현실그대로의 립체적형상으로 부각시키는 조형방법을 가지고있기때문이다.

    당시 고구려에서는 조각술이 상당히 발전되여있었다.

    《삼국사기》에 고구려에서 종묘, 제당, 사당 같은 곳에 시조왕인 동명왕과 그 왕후를 조각으로 형상해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고구려시기 조각품들이 문화생활의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있었다는것을 알수 있게 한다.

    불쑥 내민 가슴, 억센 앞다리, 부릅뜬 눈 등을 실감있게 형상하여 맹수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한 영명사 돌계단의 돌사자라든가 황해북도 곡산군에서 발굴된 엄하고 굳세며 기풍이 있어보이는 《금동아미타여래상》 등 지금까지 발굴된 고구려시기의 조각유물들은 어느것이나 다 대상에 대한 세밀한 추상과 파악에 기초하여 힘있고 굳센 선으로 웅건하고 대담하게 처리한것들로써 생동하고 기백있으며 균형이 잘 잡힌 고구려조각술의 독특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있다.

    《연가7년명금동일광3존불상》도 마찬가지이다. 이 조각유물은 세 불상의 몸체속을 궁글게 하고 거기에 철심을 세운 다음 불상들과 광배, 받침대를 따로따로 주조하여 한데 붙이는 방법으로 만든것이다.

    명상에 잠긴듯 한 두눈과 미소를 머금은 입 등 살아숨쉬는듯한 생동한 인물형상, 좌우대칭수법에 의한 옷주름조성과 물고기지느러미모양으로 시원스럽게 처리한 옷자락, 활활 타래쳐오르는듯한 불길무늬가 선새김으로 박력있게 형상된 광배 등은 당시 발전했던 고구려의 우수한 조각술과 금속주조기술을 보여주는것이다.

    광배뒤면에는 《연가 7년》 즉 A. D. 539년에 고구려 평양성의 락랑동사에서 연이라는 사람이 이 조각을 완성했다는 내용의 4행 46자로 된 명문이 새겨져있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것은 명문에 새겨진 《연가》라는 년호이다. 중세동방나라들에서 년호는 황제만이 제정할수 있었다는 력사적사실을 념두에 둘 때 유물에 새겨진 《연가》라는 년호는 이미 알려져있던 《건홍》, 《연수》, 《영락》 등의 년호들과 함께 고구려가 당당한 황제국으로서 자주적이고 존엄있는 주권국가였다는것을 명백히 보여주는것이다.

    고구려인민들의 뛰여난 예술적재능과 동방의 강력한 주권국가였던 고구려의 위용을 확증해주는 이 조각유물은 현재 조선중앙력사박물관 고구려실에 진렬되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