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24(1935)년 10월 어느날이였다.
일제는 1만명이라는 대병력에 경기와 중기, 대포는 물론 비행대까지 동원하여 처창즈유격구에 덤벼들었다.
그때 유격구에는 불과 100여명정도되는 유격대와 전투경험이 없고 무장도 변변치 못한 반일자위단, 청년의용군성원들밖에 없었다.
대원들은 물론 지휘관들까지도 긴장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지금 우리가 차지하고있는 방어구역일대의 자연지리적조건은 적들이 공격하기에는 불리하고 우리가 방어하기에는 매우 유리하다고 하시면서 승리의 신심을 가지고
김정숙동지의 말씀과 그이의 여유작작한 태도는 무겁게 내리누르던 긴장된 공기를 한껏 날려보내고 대원들의 기세를 돋구어주었다.
드디여 전투가 시작되였다.
처창즈유격구를 삼면으로 공격해오던 적들은 고동하기슭에 이르러 더 전진하지 못하고 유격대가 차지한 진지위치를 알아내려고 눈먼 총질과 함께 포사격을 해대기 시작했다.
기관총좌지옆에 자리를 잡으시고 적정을 살피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대원들에게 적들이 우리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쏘는것이니 움직이지 말라고 일깨워주시였다.
그이께서 예견하신대로 적들은 아무리 포사격과 폭격을 하여도 혁명군의 진지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것을 보고 다리를 건늘 차비를 하였다.
고동하물과 동남차물이 합치는 합수목에 놓인 좁은 나무다리를 건느지 않고서는 적들이 처창즈유격구로 쳐들어올수 없었다.
처창즈의 관문이라고도 할수 있는 이 중요한 방어진에는 제일 우수한 사수들을 뽑아서 배치하였는데 김정숙동지께서도 이 매복조에 선발되시였다.
놈들이 다리를 절반쯤 건너왔을 때 매복조원들은 신호에 따라 일시에 사격을 들이댔다.
삽시에 다리우에는 적들의 시체가 한벌 깔리였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적아간의 치렬한 전투는 계속되였다.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대비할바 없이 우세한 적들과의 정면대결은 시간을 끌수록 아군에게 불리하였다.
전술적우세로써 놈들을 타승해야만 하였다.
어려운 전투환경속에서도 김정숙동지께서는 적들의 지휘체계를 마비시키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고 일본도를 휘두르며 사병들을 내몰고있는 장교놈들을 잘 겨냥하셨다가 단방에 꺼꾸러뜨리시였다.
삽시에 지휘체계가 마비된 적들은 대가리없는 벌떼마냥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하면서 갈팡질팡하였다. 이런 틈을 타서 아군의 기관총을 비롯한 일체 화력수단이 집중사격을 들이댔다.
통쾌한 이날의 전투가 고조에 이르렀을 때 긴급한 정황이 나타났다.
다리를 돌파할수 없음을 간파한 적들이 서남차에서 동남차에로 넘어오는 지점에 몰켜들었던것이다.
그런데 아군의 기본력량을 다리에 집중시켜 배치하다나니 거기에는 청년의용군밖에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몇명의 유격대원들과 함께 청년의용군이 차지한 진지로 달려가시였다.
정황은 매우 위급하였다.
적들이 벌써 코앞에까지 몰켜왔던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숨도 돌리실 사이없이 적들에게 돌사태를 안기자고 다급히 웨치시였다.
적들이 가까이까지 접근해온 조건에서 적은 인원으로 조준사격을 해서는 적들의 공격을 좌절시킬수 없음을 한순간에 포착하시고 하시는 그이의 웨침이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청년의용군 대원들은 미리 준비해놓았던 돌들을 굴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적들에게 있어서 예상치 못했던 타격이였다.
적들은 무리죽음을 당하였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놈들은 황황히 달아빼고말았다.
이렇게 되여 위급한 정황은 제때에 수습되게 되였다.
전투가 끝난 다음 모두가 김정숙동지께 달려와 어떻게 그런 묘한 생각을 하시였는가고 하면서 진심으로 전투성과를 축하하였다.
적들을 곤경에 몰아넣은 《돌사태》전법은 김정숙동지의 발기에 의해 미리 준비된것이였다.
처창즈유격구는 이날 김정숙동지의 능숙한 전투지휘로 사수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