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녕안사람들이 무작정 문들을 닫아걸고 조심스레 동정을 살피다나니 조선인민혁명군은 한동안 밥도 한지에서 지어먹고 잠도 한지에서 자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들이 애초에 오해와 불신을 앞세우고 등을 돌려대게 된것은 간악한 일제의 반공선전으로 인하여 초래된 후과였다. 이미 앞서 여러 차례 주민들속에 들어갔던 정치공작조들도 이런 랭대를 받았고 매번 실패로 끝났으며 나중에는 북만일대전반을 혁명화하는 사업까지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였다.
앞선 정치공작조들이 분명 격동적이고 호소적인 선전을 하였지만 실패하게 된것은 인민들의 마음속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무턱대고 인민들을 가르치려 한데 바로 그 원인이 있었다. 인민들의 마음속문을 열고 들어가는것이 급선무였고 가장 난해한 문제였다.
이러한 실태를 깊이 헤아려보신
하모니카중주단은 처음에 《아동가》를 비롯한 경쾌한 음악들을 멋지게 연주하여 동네조무래기들을 하나둘 모여들게 하더니 나중에는 《아리랑》으로 수백명에 달하는 온 동네를 다 불러내였으며 련이어 입재주군, 익살군들을 등장시켜 구경군들모두가 배를 그러쥐다못해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웃기면서 장내를 흐물흐물하게 만들어놓고야말았다. 그런 다음에야 《하모니카중주단》정치공작조의 성원들은 항일선전사업도, 혁명군원호호소도 포함하여 선전선동사업에서 할것은 다 하였다.
이렇게 녕안사람들의 마음속문을 연것은 하모니카중주단이였다.